청년성서모임의 지도신부님들과 지도수녀님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곳입니다.

(12년 05월) “나는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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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

지도신부 유인창 안사노

청년성서모임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지난 호 권두언에서도 말했듯이 정말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제관 앞뜰에 있는 벚꽃나무에 벚꽃이 만개했다가 눈처럼 쏟아져 내렸고요, 지금은 송홧가루가 바닥을 온통 노란색으로 칠해 놓았습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마치 찹쌀떡을 먹을 때처럼 신발 밑창에서 쩌억 쩌억 하는 소리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덥다덥다 해도 역시 봄은 아직 우리 곁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더라고요.

‘덥다’는 말을 하니까, 갑자기 여름 연수에 대한 걱정이… 제가 이번에 여름연수에 들어가거든요. 지도신부가 아니라, 연수생으로요. 그래서 지금 곽선희 미카엘라 봉사자님과 그룹 나눔을 하고 있답니다. 직장인 창세기 연수기획실의 정 은 글로리아와 강혜정 젬마 실장님이 함께 나눔을 해주고 있는데요, 저의 몰입도와 열정에 다들 혀를 두르더군요. 지도 신부가 달리 지도 신부겠어요? 거기다 대표 지도 신부인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대표 지도 신부’가 아니라 ‘대표로 지도 받는 신부’라는 느낌입니다. 너무 모르는 게 많잖아요. 스펀지 같은 흡입력으로 모든 걸 익혀 나가고 있지만, 가끔 한계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도 제 주변에 너무 좋고 훌륭한 우리 청년성서모임 가족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줄 모르겠어요. 정말 이렇게 멋진 젊은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니, 저는 운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나이가 많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랄까. 제가 초강력 동안이기는 하지만, 속은 겉과 다르거든요. 며칠 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더니 성대에 육아종이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육아를…?’이라고 생각했을 뿐 걱정이 안 되네요. 주님 사업 하다가 생긴 병이니까, 주님께서 낫게 해주시지 않겠어요? 사실 저보다 더 열심히 하는 우리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린다는 게 말이 되겠어요? 저, 지난 부활피정 때 얼마나 놀랐게요. 부활 성야 미사 3시간 동안 어쩜 그렇게 경건할 수 있는지! 예식 자체의 엄격함을 준수하면서 그렇게 아름답게 전례 분위기에 잠길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더군요. 40여곡의 성가를 합창하면서 기도하는 모습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163번 ‘주여 나를 받으소서’를 노래할 때는 동화‘금도끼 은도끼’가 떠올랐습니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요? 부활 피정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전래 동화로 전환하니까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 아시죠?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그만 실수로 연못에 도끼를 빠뜨렸다가 산신령으로부터 금도끼와 은도끼까지 선물 받는다는 내용이잖아요. 산신령이 나무꾼에게 금도끼와 은도끼를 보여주면서 ‘이게 네 도끼냐?’고 묻지만 정직한 나무꾼은 아니라고 자신의 도끼는 평범한 도끼라고 대답합니다. 성실하게 살아온 그의 삶에 비춰볼 때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 결국 금도끼와 은도끼라는 상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 나무꾼은 욕심쟁이입니다. 남의 것이나, 필요 이상의 것을 탐내는 뒤틀린 욕심쟁이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만큼의 대가만 바라는 성실한 욕심쟁이 말입니다. 그 덕에 그가 물리친 금도끼와 은도끼도 받게 된 것이고요.‘성실함이 최대의 무기’라는 표현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그게 성가 163번과 무슨 상관이냐고요? 잘 들어보세요.

‘주여 나를 받으소서’에 이런 가사가 있죠?‘저의 모든 자유와 기억과 지성과 의지와, 저에게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셨나이다. 주님, 이 모든 것을 주님께 도로 바치나이다.’그렇죠? 바로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주관하시라 하면서 마지막에는 이렇게 청하지 않습니까?‘저에게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만을 허락하소서.’맞죠? 세상에나! 모든 것을 주님께 다 바친다면서 대신 주님의 사랑과 은총만을 허락하시라니… 주님의 사랑과 은총, 그게 사실 최고의 선물 아닌가요? 주님의 사랑과 은총 속에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일 텐데, 아니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듬뿍 받으면 그 안에 자유와 기억과 지성과 의지 등도 덤으로 주어지게 될 것이고, 그거야말로 최상의 선물이 될 텐데, 이런 욕심이 어디 있을까요? 그것도 그냥 막무가내로 ‘주세요!’가 아니라,‘허락하소서’라니? 이토록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에게 어찌 주님께서 가만히 계실 수 있으실까요?

나무꾼이 착한 마음으로 금도끼 은도끼를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한 덕분에 상으로 그것들을 받은 것처럼, 우리 역시도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주신 것을 포기한 덕분에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니까, 이 둘의 메커니즘이 많이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청년성서가족들은 참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 영성적인 생활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청년 성서 가족들은 너무 착합니다. 이건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네요. 그냥 착하다고 말할 밖에는. 4월 중순이었죠. 혼인을 앞둔 성서 가족이 찾아왔었어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혼수 비용 일부를 들고 와서는 성서모임을 위해 써달라는데,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바로 며칠 전입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는 성서 가족을 찾아갔었죠. 피해 보상비의 반을 기부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 반의 1/5만 받고 돌려줄 거라 했습니다. 그룹 봉사자 피정을 가지 못 하게 된 죄로 그렇게 하는 거라며 고집을 부리더군요. 아니, 세상에 교통사고로 피정을 갈 수 없게 된 게 왜 죄가 되나요? 피해 보상비에서 십일조를 받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본인의 뜻이 하도 간절해서 그건 양보하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문자가 왔더군요, 다른 곳에 보내겠다고요. 나, 참… 이러한 예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오늘 어린이날인데, 이 시간에도 아리와 희경은 나와서 일을 하고 있고요. 이 황금연휴에 조 신부님과 전 수녀님은 교육부원들과 함께 1박 2일 피정을 들어가셨답니다. 물론 100여명의 본당⋅대학 그룹봉사자들이 그 피정에 함께 하고요. 매 행사 때마다 찬양부원들은 개인 차량과 용달까지 동원해서 파견을 나가고요. 창세기 연수실원들은 미화방 청소에 항상 앞장섭니다. 다른 부서원들도 다 자신들의 몫 이상을 하고 있는데, 지면이 허락하지 않으니 다음에 자세히 소개할게요.

매년 500여명의 연수 봉사자들, 또 이들과 3박 4일 혹은 8박 9일 나눔의 삶을 사는 3,000여명의 연수 참가자들…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요? 혹자는 그럽니다. 착한 사람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만약에 그렇다 해도 저는 그냥 여러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힘이 닿는 그날까지 함께 할 겁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나는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

주님이 그리 하신다는데 그분의 종인 제가 무엇이라고… 그러니까 성서가족 여러분, 우리 언제까지나 함께 해요.

2012-06-16 18:15:24 from 115.95.9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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