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과 사람을 창조하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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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에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에 관해 살펴 보았다면 이제 2과에서는 사람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당신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어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다른 물체도, 흙도 아닌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당신께서 직접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온갖 좋은 것들, 필요한 것들을 다 마련해 주십니다. 들의 온갖 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신 다음 사람이 각각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를 바라보십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항상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름을 부름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롭고도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동물들을 데려가시어 이름을 지어 부르게 하시고 이들을 돌보게 하십니다.

사실 이 첫 사람의 모습은 하느님과 온전한 친밀함의 상태를 드러내어 주며, 사람과 하느님이 함께 만나며 기쁨을 누리는 직접적 통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온갖 동•식물들과 어울려 살아가며 에덴 동산을 돌보며 가꾸는 사람은, 자신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찾지 못합니다.

다른 생명체들은 사람과 같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사람처럼 직접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주시지 않았지요. 그리고 오직 사람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그는 다른 생물들 안에서는 자신의 협력자를 찾지 못합니다.

사람을 흔히 고독한 존재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협력자를 찾지 못한 사람은 홀로 있는 고독과 외로움을 피할 수 없었나 봅니다.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 안에서, 그 긴밀한 친교안에 있음에도 홀로 있는 모습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도 좋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라고 말씀 하시며 새로운 사람, 여인을 창조하십니다. 여인의 창조로 사람은 하느님과의 친교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친교가 가능하게 됩니다.

아담의 갈빗대는 남녀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창조의 본질 (‘누구의 뼈와 살이다.’ 29:14, 판관 9:2, 2사무 5:1)을 밝혀 줍니다. 여인 앞에서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2:23) ”라고 고백하는 사람의 탄성처럼, 이 여인 앞에서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며, 서로가 서로를 통해서 완성됨을 드러냅니다.
혼인 성사에서 언급되는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라는 24절의 말씀은 혼인의 성사성을 잘 설명해 줍니다. 혼인을 통한 남녀의 결합은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온전히 자신의 전 존재를 내어 주는 풀릴 수 없는 상호간의 계약이자, 유대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 여인의 창조는 인간과 인간의 기본적인 친밀함안에서, 육체적, 물질적 영역을 넘어서는 영적인 친밀함의 의미를 밝혀 줍니다. 이는 고독에서 일치로의 변화이며, 인간의 관계성, 사랑 받고자 하고 또 사랑하고자 하는 사랑의 참 의미를 밝혀 줍니다. 그래서 여인의 창조는 완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통해 완성을 향해 나아가며 선하고 아름다운 최종적 완성의 모습을 드러내 줍니다.

모든 것을 선하고 당신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사람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이 명령은 하느님과 인간이 공유하는 약속인 것이지요.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 2:16-17)

하느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이용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한 나무, 즉, 선과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따먹지 말라라고 명령하시며, 더 나아가 그 열매를 따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까지 경고 하십니다.

이왕에 마련해 주실 것이었다면, 모든 것을 다 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왜 하느님께서는 한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왜 그 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죽을 것이다’라고 경고 하셨을까요?

여기서 먼저 ‘먹는다’라는 동사가 가진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먹는 다는 것은 그것과 닮아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히브리 사람들의 생각에 따르면 과일을 먹으면, 그 과일은 나의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선과 악의 나무의 열매를 먹는 다는 것은 그것을 닮아간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한가지 살펴볼 점은, 히브리 성서의 특별한 용법입니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약 성서 안에서는 자주 이러한 방식이 사용되는데, 바로 서로 반대되거나 다른 두 단어를 제시해서 두 가지 다른 외형의 윤리적이거나 실재적인 ‘모든 것’을 함축해서 드러내는 용법입니다. 성서안에서 아름다움과 추함, 행복과 괴로움, 기쁨과 고통, 삶과 죽음을 통해서도 ‘모든것’을 드러내고 있는 바와 같이 바로 ‘선과 악’도 이 세상의 모든 것, 즉, 모든 진리에 대한 부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먼저 성서 안에서 ‘앎’을 뜻하는 동사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이는 단순하게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단지 표면적으로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깊숙한 심연의 진실을 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을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무엇인가를 ‘안다’라는 것은 그 내부 깊숙이, 내면의 진리까지도 이해하고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진리’, 내면의 진실자체를 안다는 것이 바로 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 깊숙한 내면의 진리를 알고 그것을 닮아가고 또 소유하는 것이 바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됩니다. 이는 그리하여 인간에게 허락된 부분이 아니었고 또 허락될 수도 없는 부분인 것입니다. 이는 오직 하느님에게만 허락된 영역으로 남게 됩니다.

창세기 2장의 성서는 사람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선하게 창조된 사람은 하느님께서 모든것을 마련해 주시고, 또 그 협력자를 통해 상호 완성을 향해 나아가지만, 하느님과는 다르다는 것을, 하느님과는 같아 질 수 없다는 한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이요 피조물임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을 수 없으며 허락되지 않는 명령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2014-11-08 12:40:15 from 223.62.18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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