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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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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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마태 2,2)
어린 아기가 새로 태어나면 주위 사람들이 흥분합니다. 그 생명의 신선한 충격을 체험하고 싶어 마음을 졸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진 아기는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게 만듭니다. 우리의 왕이 태어나셨습니다. 그 아기는 세상의 어떤 아기보다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아기입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오신 그분의 아들입니다.
복 음 (마태 2,1-12)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ㅇ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ㅇ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ㅇ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ㅇ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ㅇ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ㅇ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ㅇ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ㅇ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ㅇ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ㅇ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ㅇ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제 1 독서 (이사 60,1-6)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ㅇ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ㅇ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ㅇ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ㅇ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ㅇ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제 2 독서 (에페 3,2-3ㄱ. 5-6)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이미 들었을 줄 압니다. ㅇ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ㅇ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ㅇ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구세주의 성탄에 이어지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셨음을 기뻐하고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인류의 구원자로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디 계신지 과연 우리는 알고 있습니까? 어쩌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는 그분을 찾아 나서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할 만큼 그분의 탄생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믿음에 혼란을 겪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그분이 어디 계신지 모른다면,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분의 탄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헤로데 왕을 비롯한 많은 유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그분의 별을 보았고 그 별은 우리가 머물러 있던 세계로부터 우리를 일으켜 세워 전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길을 내딛도록 이끌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확신이었고 기쁨에 찬 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에 이르러 별을 잃어버린 것처럼 우리도 도시의 현혹스런 불빛 속에서 우리가 애초에 모험의 길을 떠나게 했던 그 별을 잃어 버렸습니다.
☞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별을 잃어버리게 만든 그 도시의 현혹스런 불빛의 정체가 무엇이었을까요?
우여곡절 끝에 다시 별을 찾게 된 동방 박사들은 말구유간의 가난한 아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그들은 헤로데로 대표되는 현실적인 가치의 강력함과 아기 예수로 대표되는 신앙적인 가치의 무력함 속에서 다시 깊고 짙은 어둠의 나락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마치 우리가 신앙 안에서 때때로 누리던 위로, 환희, 기쁨이 다 사라지고 회의와 무력감만이 가득 차 어쩔 줄 몰라 할 때처럼 말입니다.
사실 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으로부터 오는 빛이었습니다.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이사 60,2)

그 빛 속에서 동방 박사들은 탄생하신 평화의 왕, 인류의 구원자를 만나게 되고 헤로데라는 현실적인 가치를 거부하고 아기 예수라는 신앙적 가치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새로이 태어납니다.
사도 바오로가 제 2독서에 말하는 계시된 신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신비는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일어나 비추라”고 말입니다.
☞ 신앙의 빛 속에서 탄생하신 나의 아기 예수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어쩌면 그분은 우리의 좌절과 무력감과 실패를 말구유 삼아 자신의 권능을 감추시고 누워 계신지도 모를 테니까요. 그분을 만나서 그분께 우리의 정성어린 예물을 드리고 경배할 수 있을 때까지 예수님의 공현은 바로 우리의 과제요 걸어갈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유다인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마태 2,2)
과연 우리는 알고 있습니까?‘사람들’ 때문에 힘든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일방적인 이유 때문은 아닐 테고, 바로 그 ‘내’가 끼여 있다는 사실 자체도 나를 힘들게 한다. 사람한테 치이고,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어지는 것처럼 씁쓸한 기분이 드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생기면 지금까지는 내 방식으로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적당히 정리해서 거리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서로 간에 거리가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 시끄러운 일들도 조용히 가라앉게 되고, 감정도 예전 같지 않아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거니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사람을 만날수록, 또 나이를 먹을수록 쌓여있는 일 해치우듯 그렇게 관계를 정리할 수는 없는 상황들이 생기게 된다. 또 사람관계라는 것이 사람 스스로 묶을 수도, 풀 수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주님 공현 대축일의 말씀을 묵상하다 문득, 이렇게 힘들다고 불평하는 나의 생활 어디에서 주님을 만나고 있는가 하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가톨릭 신자라고 내세우고, 기도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말은 늘어놓으면서 과연 얼마만큼 내 생활의 문제들을 그분 앞에 보여드렸고, 또 어려움 중에 그분을 얼마나 찾았는가?
우리의 새로운 한 해를 열어주시며 그 모습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며 내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유다인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
2012-12-27 18:19:36 from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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