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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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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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8주일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루카 6,4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의 중요함을 일러주는 격언이 많습니다. 말의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소리겠지요. 우리의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는지 반성해 봅시다. 어쩌면 정말 그럴듯한 말로 많은 이들에게 많은 것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서 넘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마음이 풍성해지면 내게서 나오는 말에서 향기가 나지 않을까요?
둥 치

복 음 (루카 6,39-45)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ㅇ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ㅇ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ㅇ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ㅇ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ㅇ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ㅇ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제 1 독서 (집회 27,4-7)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ㅇ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 ㅇ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ㅇ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제 2 독서 (1코린 15,54-58)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ㅇ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ㅇ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ㅇ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ㅇ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길라접이

 

오늘의 말씀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내놓는다는 복음 말씀과,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제 1독서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나쁘게 하는 대부분의 원인은 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나에게 던진 말 한마디가 가슴에 화살처럼 박혀서 두고두고 곱씹으며 그에 대한 나쁜 생각을 하게 합니다. 아마 그 반대로 내가 무심코 한 말 한 마디가 어느 누군가의 마음에 독침처럼 박혀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혀끝을 조심하라고 했나 봅니다.
오늘 1독서에서도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 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며 말을 수련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탓하기 전에 내 눈에는 들보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탓한다는 우리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마음에 참된 희망을 주는 말이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좋은 말을 하도록 수양을 쌓아야 할 터인데, 말은 마음의 열매이므로 결국 마음을 잘 가꾸는 것이 말을 잘하는 길이라 생각됩니다.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하는 원인도 말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한 단순한 말 한 마디가 늘 마음을 따사롭게 해주며 잠자리마저 편안하게 해줍니다. 한 겨울, 길을 걸을 때 털장갑 낀 손으로 귀를 감싸주며 ‘춥지요?’라고 한 한 마디가 겨울 내내 귀를 따뜻하게 해주었다는 어느 연인들의 이야기가 정겹습니다. 아마 오늘 1독서에서 말하듯 말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말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의 열매입니다.
잘 익은 열매가 그 나무의 품종과 가꾼 사람의 기술을 드러내듯 우리의 좋은 말도 우리의 본심과 우리의 마음을 가꾼 농부를 드러냅니다. 저는 사람의 마음에 참된 희망을 주는 말이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좋은 말을 하도록 수양을 쌓아야 할 터인데, 말은 마음의 열매이므로 결국 마음을 잘 가꾸는 것이 말을 잘하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 없고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못하다는 오늘 복음은 우리 마음의 스승이자 농부가 누구이어야 할지를 명백하게 보여 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이 자양분을 흡수하여 우리의 참 희망인 예수님을 증거하는 좋은 말로 열매 맺도록 노력합시다.
주님을 위해서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오늘 2독서의 말씀은 우리의 좋은 말이 꼭 열매 맺으리라는 보증이 되어줍니다.

“그 마음이 주를 사랑하기에 항상 입으로 주를 칭양하나니 대개 사람이 재물을 사랑하면 항상 재리를 말하고 이름을 사랑하면 항상 공명을 말하는 지라. 주께서 일즉 무리를 경계하야 갈아사대 선인의 마음은 보배 곳집 갓아야 항상 선한 말을 발하고, 악인의 마음은 독한 물건 곳집 갓하야 항상 악한 말을 발한다 하시니, 대개 마음에 쌓인 바는 반드시 입에 발함이라.

- 성경직해 -

내 마음의 창고

☞ 최근 내 마음의 창고가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 창고 재고 조사를 해봅시다.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거멀못

“위선자야” (루카 6,42)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위선자라는 말이다. 내가 얼마나 내 자신과 주변사람들에게 솔직했고, 얼마나 진실된 마음을 가졌는지 반성을 해본다. 현실과 나의 마음 사이에서 우리는 갈등을 한다. 그러나 뭐든지 내가 먼저이고, 내가 속해 있고, 나와 관계있는 것이 먼저인 것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는가?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고, 나의 결점과 약점은 들킬세라 더욱더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떤 잘못을 했을 때 내가 하면 요령이고 남이 하면 잘못된 행동이라고 질타와 역정을 내기도 했고, 이 사회를 공평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던 일들이 스쳐지나간다. 정말 솔직해 지고 싶다. 내 자신에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에게…. 나의 부족함을 봉헌할 수 있는 그런 자녀가 되기를…. †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집회 27,7)

침묵의 소중함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이라는 시가 자꾸 입 안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떠나는 자 떠나게 하고 잠드는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이라는 구절이 특히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사람은 말로 평가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의 말실수로 사람들에게 준 상처를 생각해 봅니다. 하지 말아야 할 때에 말을 해서 있는 사람을 떠나게 하고, 잠자는 사람을 깨워놓고 떠나간 사람들, 그렇게 깨운 사람들을 험담하는데 보냈던 기억들이…. 지금 돌아보면 많이 후회되고 안타까운 순간들이지만 그런 경험들을 교훈 삼아 앞으로의 나의 길에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1코린 15,55)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있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친구, 부모님, 형제들, 그가 누구이건 간에 상처를 준 그 사람은 ‘너를 위한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들?. 나의 결점을 지적하고, 나를 위해 충고하고, 때론 남들과 비교해 주고, 이 밖에도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나를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나의 결점, 나의 아픈 부분을 지나쳐, 어쩌면 멀쩡하던 부분까지 들추어내어 마구 할퀴어놓은 것도 같다. 그런 일이 생길 때면, 나는 아주 오래 전 일까지 떠올리면서, 멍든 곳이 미처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상처받는 아주 불쌍한 인생을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란 것일까 하며 감상적이 되서는 눈물도 찔끔 짠다.
그런데 남이 나에게 하는 것들은 이렇듯 독침으로 생각하면서 내가 남에게 하는 모든 것은 만병통치약쯤으로 여길 때가 많다. 그렇게 감상적이던 나는 어느새 돌변하여 너무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충고 한 마디 한 마디를 아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처로 남기면서 다른 사람들의 조그만 티 하나도 나의 지적이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나에게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고 하느님께서 묻고 계신다. 가슴이 뜨끔하다. 사랑하거든 침묵하라고 했던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침묵인 것을?.
2008-06-12 17:10:18 from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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