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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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대림 제 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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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대림 제1주일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루카 21,34)
사람들은 늘 크고 작은 걱정들을 끊임없이 하며 살아갑니다. 앞일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겠지만, 너무 많은 걱정거리는 마음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걱정, 근심, 고민이 있습니까? 세상의 근심, 걱정을 주님께 맡기고 우리의 마음을 모아봅시다. 늘 깨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흩어진 우리들의 마음을 모아주실 것입니다.
복 음 (루카 21,25-28.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ㅇ“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ㅇ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ㅇ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ㅇ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ㅇ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ㅇ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ㅇ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제 1 독서 (예레 33,14-16)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ㅇ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ㅇ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제 2 독서 (1테살 3,12-4,2)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ㅇ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ㅇ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 우리에게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ㅇ 우리가 주 예수님의 권위로 여러분에게 지시해 준 것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길라잡이 새로운 전례력의 첫 주이며, 대림시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대림이란 인류가 수세기에 걸쳐 고통스러운 체험을 하면서 구원에 대한 간절한 열망에 싸여 그분께서 정의와 평화를 회복해 주시는 승리자로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바라고 희망하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흐르고 있는 대림은 미래를 향해 뻗어 가는 기다림의 정신으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인류가 수천 년을 기다린 그 역사적 그리스도의 오심으로써도 끝나지 않는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항상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 안에서 그리고 역사와 세상과 교회 안에서 성숙되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매 순간 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대림을 살며 그분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도 온통 우리들의 마음속에 기다림의 자세를 심어주고자 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예루살렘의 종말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루카 복음사가는 거기서 나타나고 있는 징조들을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우리들이 매일매일 준비해야 할 세말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복음사가는 그 당시의 묵시문학적 표현으로써 온 세상 만물이 새로워질 것을 예고합니다. 그 새로운 세상은 한편으로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어 선물로 주시는 것이지만, 한편 인간이 거룩한 생활과 깨어 기다림으로써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는 인간 협력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이에 관해 예수님께서는 이야기의 말미에 가서 다음과 같이 권고하십니다.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4.36)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함으로써 매일의 생활이 계속적인 대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제 2독서에서 우리들에게 서로 사랑하기를 간곡히 권고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시는 날 주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으로서 떳떳이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주님의 복음을 배운 대로 실생활에서 실행하여 신자 생활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간절한 기다림
1) 무엇을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습니까?
☞ 그 체험에 대해 나누어보시고 참된 대림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1코린 1,8)
늘 깨어
2)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 늘 깨어 기도하여라.”
☞ 대림절의 첫 주를 맞으면서 나의 대림절 생활계획을 세워보시고 함께 나눕시다.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루카 21,34)
얼마 전에 아주 우연하게 대학 동창을 만나게 되었다. 학창시절 그리 친하게 지낸 편은 아니었으나, 오랜만에 보게 되어서인지 반가운 마음에 서로 이것저것 물어 보고, 얘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도 그 시절의 일들과 ‘나’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지금도 별다를 바 없지만 그 땐 뭐 그리 심각하고 어려웠는지 혼자 낑낑 고민하고, 동동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냈었다. 그 때의 그 고민들, 그 근심들 중에는 지금에 와서는 무엇 때문이었는지조차 기억에 없는 것도 있다. 정말 그 때는 왜 그렇게도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을까?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혹 지금도 어쩌면 중요한 것은 놓치고 별로 대단치 않은 일상의 근심들에 너무 매달려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오늘 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지 배운 대로 살라고 말씀하신다. 대림절을 시작하며 새롭게 다가오실 아기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도록(루카 21,36) 살아가는, 여러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먼저 그분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나’이기를 바래본다. †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루카 21,34)
벌써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의 전례로 본다면 한 해의 시작이지만 세속적인 눈으로는 한 해의 마감이기에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또 한 살을 먹는구나 라는 부담감(?)과 지난 한 해를 어찌 지냈지 하는 아쉬움으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세상은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빨리 움직여주기를 재촉하지요. 여기저기 망년회 계획도 세워야 하고, 연말정산도 해야 하고 만난 지 오래된 친구들도 왠지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야 할 것만 같고 이렇게 지내다 보면 아기 예수님은 이미 제 눈앞에 와 계시겠죠. 그리고 그때엔 그분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기엔 너무 늦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겠네요. 왜냐구요. 우린 이미 세상보다는 그분께 선택을 받은 신앙인이잖아요. †
“여러분이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과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도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1테살 3,12)
벌써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의 전례로 본다면 한 해의 시작이지만 세속적인 눈으로는 한 해의 마감이기에 마음이 분주해집니다. 또 한 살을 먹는구나 라는 부담감(?)과 지난 한 해를 어찌 지냈지 하는 아쉬움으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세상은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빨리 움직여주기를 재촉하지요. 여기저기 망년회 계획도 세워야 하고, 연말정산도 해야 하고 만난 지 오래된 친구들도 왠지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야 할 것만 같고 이렇게 지내다 보면 아기 예수님은 이미 제 눈앞에 와 계시겠죠. 그리고 그때엔 그분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기엔 너무 늦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겠네요. 왜냐구요. 우린 이미 세상보다는 그분께 선택을 받은 신앙인이잖아요. †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1테살 4,1)
어렸을 때 텔레비전을 켜면 가끔 화면조정시간이 끝나고 애국가가 흘러 나왔습니다. 오빠는 저에게 애국가가 나오면 항상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한다고 했고, 초등학교 4학년 정도까지 텔레비전 앞에서 차렷 자세로 애국가를 따라 부르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웃음도 나오지만, 적어도 그때는 배우면 배운 대로 참 순수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사순절에는 평일미사에 참례해야 한다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에 미사를 갔었고, 매일 저녁 엄마와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었구요. 어렸을 때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했었는데, 자라면서 교리에 대한 지식은 풍부해져 갔지만, 기도도 잘 안하고 미사에도 가끔 빠졌습니다. 다른 바쁜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제 자신을 합리화시키면서 말이죠.
자신이 당하실 고통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자신을 내어놓으신 예수님 생각이 납니다. 말씀을 묵묵히 따랐던 예수님 저도 제 머리보다는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기도하면서 성탄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
2012-11-17 16:34:47 from 115.9

[다해] 대림 제 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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