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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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성령 강림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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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성령 강림 대축일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은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로마 8,14)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길은 우리를 갈등하게 합니다. 몸이 가고 싶은 곳과 마음이 가고 싶은 곳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유혹에 그냥 넘어가 버리고 싶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은 우리 안에 살아 활동하시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알아들을 수 있게 마음을 열고 주님 안에 머무십시오.
둥 치

복 음 (요한 14,15-16.23ㄴ-26 또는 요한 20,19-23)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ㅇ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ㅇ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ㅇ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ㅇ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ㅇ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제 1 독서 (사도 2,1-11)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ㅇ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ㅇ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ㅇ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ㅇ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ㅇ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ㅇ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ㅇ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ㅇ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ㅇ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ㅇ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제 2 독서 (로마 8,8-17 또는 1코린 12,3ㄴ-7.12-13)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ㅇ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ㅇ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ㅇ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ㅇ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ㅇ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ㅇ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ㅇ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ㅇ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ㅇ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길라접이

 

오소서, 성령이여!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케 하시며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부활로서 절정에 이르고 급기야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완성되어 새로운 시작을 보게 되는 인류 역사상 굉장히 의미 깊은 교회의 신비 축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는 하느님의 구원과 그분의 말씀을 이제는 교회라는 외적인 표지를 통해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은총과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을 자신의 창립일처럼 여기며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전례와 성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말은 그분만의 말이 아니고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 아버지의 말씀을 실감나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시대에는 아버지는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버지는 물론 예수님조차도 전혀 볼 수 없고 그분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바로 다음의 말씀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될 것입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직접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되살려 주시는 분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의, 그리고 그분들이 보내주시는 성령이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제 2독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오늘 제 1독서는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은 교회 창립과 교회의 공식적인 첫 말씀의 선포에 대해서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사도들이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서 성령께서 표현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는 것을 보고 놀라고 신기하게 여기며 그들의 말을 듣고 하느님을 믿기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사도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고 그들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셔서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교회의 전례와 성사, 그리고 말씀의 봉사, 세속적인 삶 속에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아버지와 아들의 현존과 사랑을 충만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이라도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성령께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기만 한다면?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 자신의 삶 속에서 성령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는지 나누어봅시다.

거멀못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사도 2,11)

같은 일을 두고도 각자 해석하는 방법에는 참 여러 가지가 있는 듯합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처럼 모든 일이 바라보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사실은요, 그런 사람과 얘기를 하다보면 그 사람은 또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하느님의 의사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엔 그저 못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주어지는 당연한 결과라고만 보여지는데, 그 사람은 거기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았다니 그 믿음과 그 마음이, 그 사람의 행동이 어떠했든 간에 하느님 보시기에 밉지 않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참 똑같은 사랑으로 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사랑할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도 그 사람은 자기 몫의 은총을 충분히 받고 있는걸 보면요. 점점 더 세상 속에서 이기적이 되어 가는 것이 죄악시되고 있지 않은 요즘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니까 그분이 기쁘실 일을 해드려야겠죠. 악할 이유가 없어서 착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기 싫지만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로마 8,14)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은 보기 싫은 사람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안 되는 사람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던 내게 그 사람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을 느껴야 하고 그 사람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셨다. 내가 내 안에 그분이 계심을 믿고 나의 행동이 그분에 의한 것이라 고백하면서도, 타인 안에 생활하시며 활동하시는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말씀을 전하는 봉사자의 자격이 있을까.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을 거저 받고도 아무 변화 없이 산다는 것은 빚을 진 채 갚을 생각도 않는 얌체라는 생각이 든다. 빚의 양이 너무 많아서 겁도 나지만, 오늘 주님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당신의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실 보호자, 곧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약속으로 힘을 북돋아주신다. 보기 싫고 미운 사람일지라도 그도 하느님의 자녀임을 느끼며 함께 하려고 노력할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안에서 더욱 역동적으로 활동하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 더디게 하신 그분께 감사드린다. †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은 이들” (로마 8,14)

조금씩 제 삶에 하느님이 들어오시는 것을 느낍니다. 아침에 일어나 당신께 아침인사를 하고, 하루를 살면서 당신과 대화하고 기도를 드립니다. 잠을 자기 전 창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달빛만이 존재하는 어둠 속에서 무릎을 꿇고 당신께 소리내어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아니 자주 당신이 없이 메마른 껍질만이 존재하는 제 자신을 느낍니다. 며칠 전 저는 제 욕심만을 생각하며, 친구가 나를 위해 양보해 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혼란스러웠지요. 그런데 문득 하느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진정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순간 제 욕심 때문에 소중한 친구에게 안 좋은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깨닫고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은 이들은 끊임없이 깨어 있기 위해 노력하고 성령을 내 마음 안에 받아들이기 위해서 비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래요. 노력 없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을 경험할 수는 없는 것 같네요. †
2013-05-19 12:42:32 from 115.9

[다해] 삼위일체 대축일
(다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