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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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부활 제 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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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부활 제 3주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 21,15.16.17)
주님, 사랑합니다. 정말 당신을 사랑합니다. 누구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느님께 드려본 적이 있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 많이 하기는 했어도 그저 기도에 쓰이는 형식적인 문구나 하느님께 많이 붙이는 수식어 정도로 쓰는 것은 아닌지요. 하느님과 사랑이라는 말은 늘 붙어 다니는 말이지만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는지는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복 음 (요한 21,1-19)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ㅇ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ㅇ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ㅇ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ㅇ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ㅇ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ㅇ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ㅇ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ㅇ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ㅇ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ㅇ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ㅇ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ㅇ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ㅇ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ㅇ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ㅇ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ㅇ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ㅇ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ㅇ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 1 독서 (사도 5,27ㄴ-32.40ㄴ-4)
그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ㅇ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ㅇ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ㅇ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ㅇ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ㅇ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ㅇ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ㅇ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 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제 2 독서 (묵시 5,11-14)
나는 또 어좌와 생물들과 원로들을 에워싼 많은 천사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백만 수억만이었습니다. ㅇ 그들이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ㅇ 그리고 나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 모든 곳에 있는 만물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ㅇ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화답하고 원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오늘의 제 1독서는 주님의 부활에 대한 성경의 내용을 총괄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제 2독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사랑에 기초를 둔, 교회에 관한 권한이 베드로에게 부여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고기잡이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분의 말씀에 따라 고기를 기적적으로 많이 잡았으며 놀랍게도 그물이 온전하다는 내용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목적 직무를 부여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시며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상기해 볼 때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교회의 전교 사명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153마리나 되는 고기를 잡았지만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기사는 주님의 말씀으로 지켜지고 계승되는 교회의 보편성과 단일성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복음에서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라고 하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물가에 서 계신 주님께 빨리 가고자 호수로 뛰어든 사람도 베드로이며 예수님의 분부에 따라 잡은 고기를 끌어 올리는 사람도 베드로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사랑의 다짐과 함께 당신의 양들을 잘 돌보는 목자의 직무를 부여받는 사람도 베드로입니다. 이상의 사실에서 오늘 복음은 양들의 목장인 교회 안에서 지도적 역할이 베드로에게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부여하신 교회의 수위권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직책의 자격 요건이 무엇이겠습니까? 성서 지식, 통솔 능력, 기획 능력, 외국어 능력 등등보다도 예수님은 사랑을 묻고 계십니다. 수난 전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의 유혹을 받게 되었다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루카 22,33)라고 하며 예수께 대한 그의 사랑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여 그 말은 무색하게 되었었습니다.
오늘은 세 번의 사랑 확인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라고 잔잔하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수난 전의 즉흥적인 고백과는 달리 베드로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사랑고백이라고 느껴집니다. 죽음을 예고하고 있음에도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 베드로의 걸음에서 그의 진실한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사랑과 희생 그리고 봉사는 유기적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교회 수위권은 양들을 보살피는 봉사와 섬김의 직분이며, 베드로의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믿음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필연적인 희생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모든 형태의 봉사는 사랑과 믿음에 바탕을 둔 희생을 - 오늘 제 1독서의 사도들처럼 - 예수의 이름으로 기뻐하게 될 때 완성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 예수님께서 “○○○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 대답의 의미를 설명해 보십시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12)
저희 어머니의 건강철학은 “아침을 먹어라”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리 약속이 늦었거나, 학교에 지각을 하더라도, 지금은 직장에 지각을 하더라도 아침을 먹지 않은 사람은 집을 나설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어머니도 나이가 드셔서 제가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는 가끔 어머니가 못 일어나셔서, 이 어머니의 원칙이 깨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침을 먹지 않으면 집을 나설 수가 없다는 것은 저희 가정의 철칙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일어나시지 않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제 저녁에 사소한 일로, 물론 제가 잘못을 해서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했답니다. 제가 무심코 한 말에 어머니께서는 무척 서운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셨음에도 제가 나가는 것을 못 본 척하고 누워 계셨습니다. 아마 우시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서모임 안에서 봉사도 하고 성경도 읽고 하면서 제 스스로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해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생각은 집안에서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쉽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신학적으로 볼 때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을 굶은 저에게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집에 돌아가서는 어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해야겠습니다. †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묵시 5,13)
예수님은 인간을 위해 그 힘든 고통과 아픔을 짊어지셨고 부활하셨다. 단지 인간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크나큰 희망과 기쁨을 남겨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절대적인 기쁨에서도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였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했다. 그 두려움은 생각지도 못한 일에 대한 반응이겠지만 지금 나의 머리 속에는 항상 깨어있으라는, 또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이 스쳐지나간다. 이렇듯 부활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환희와 기쁨으로 바꾸어주는 하느님의 크신 힘이다.
이삭줍기두려움과 어려움은 세상에서도 많이 겪는다. 정말 당신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도 많은 두려움을 느끼지만 하느님께서는 내 자신을 버릴 때 당신의 깊은 뜻을 드러내시고, 더 큰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신다는 것을 부활로써 보여주신다. 이 사실은 하느님은 영원히 나의 곁에서 빽이 되어주신다는 것일 것이다. †
2013-04-09 20:28:23 from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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