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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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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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27주일 (군인 주일)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하바 2,4)
불의가 판치는 세상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끝날’이 의로운 이들에게는 걱정과 두려움이기보다 기쁨과 희망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종이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갑시다.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사람은 성령께서 베풀어주시는 힘과 사랑과 절제로 살 것입니다.
복 음 (루카 17,5-10)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ㅇ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ㅇ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ㅇ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ㅇ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제 1 독서 (하바 1,2-3; 2,2-4)
주님,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 당신께서 구해 주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폭력이다!” 하고 소리쳐야 합니까? ㅇ 어찌하여 제가 불의를 보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재난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제 앞에는 억압과 폭력뿐 이느니 시비요 생기느니 싸움뿐입니다. ㅇ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 갈 수 있도록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 ㅇ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끝을 향해 치닫는 이 환시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 그것은 오고야 만다, 지체하지 않는다. ㅇ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제 2 독서 (2티모 1,6-8. 13-14)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ㅇ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ㅇ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ㅇ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ㅇ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

오늘 성경 말씀의 주제는 ‘믿음’ 입니다. 복음에서 제자들은 스승이신 예수님께 다음과 같은 청원을 드립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이 단순한 물음 안에는 불확실한 미래의 운명과 어려운 현실 앞에서 불안해 하는 제자들의 심리가 담겨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불안감, 이것은 곧 신앙적 근본이 흔들리는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지라고 최소의 요구를 하십니다. 아주 보잘것없고 미소한 겨자씨이지만 그것이 담아내고 있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하느님의 구원능력이 담긴 실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믿음은 구원의 선물입니다. 이 믿음은 또한 양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질적인 것이며 형식이 아닌 내용으로 꽉 찬 구원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구원의 본질이고 뿌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역사를 넘어서 하느님 구원을 향한 용기와 결단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편적 선물의 하나가 이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믿음의 징표를 가장 확연하게 체험할 수 있는 때가 어쩌면 불의와 혼돈이 판치는 시대와 사회, 개인적으로는 심각한 실존 위기와 고난의 상황이 주어질 때였습니다.
1독서는 그러한 믿음의 실체를 언급합니다. 하바쿡은 고난과 혼란이 판치던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로써 오늘 독서 말씀 안에 그런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는데 제가 언제까지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야 합니까?”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능력을 의심하고 항변하는 애절한 요청입니다.
하느님의 대답은 한마디로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는 확답을 주십니다. 성실한 의인, 이는 곧 하느님 말씀에 대한 성실함을 말합니다. 즉 “누구나 막힘없이 읽어 갈 수 있도록 판에다 분명하게 써라”고 하신 것처럼 결국 하느님 말씀을 저버리지 않고 ‘억압과 폭력, 시비와 싸움’이 판치는 세상에서조차 흔들림 없이 말씀을 믿고 외롭게 지켜 나가려는 자들에게 반드시 승리의 날을 맛보리라는 확신을 1독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위대함은 이처럼 하느님 말씀에 대한 굳은 신뢰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비록 자신의 나약한 신세를 한탄한 하바쿡이었지만 의인으로써 겪어야 할 고통을 참아 받고 성실하신 하느님 말씀에 살고자 했던 참 예언자였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믿음의 정신을 계승한 사도 바오로도 2독서에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고난을 통한 믿음과 더불어 보다 구체적인 본보기를 갖도록 요구합니다. 즉 실천이 없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의 믿음은 구체적인 삶이요, 증거자로써 사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에 대한 부연으로 짤막한 종에 관한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하여라.”
믿음은 결코 어떤 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되고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데서 시작됨을 예수님은 일깨우십니다. 이 믿음의 원리는 제자들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바였습니다. 아무것도 자신의 권리나 주장을 내세움 없이 무조건적으로 하느님 말씀이기에 믿고 따라야 한다는 원칙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믿음의 원리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은 참된 믿음을 갈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열망을 대변하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 내가 생각하는 믿음의 원리는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루카 17,5)
믿는 이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하느님 곁에서는
씨앗도 물방울도 죽지 않고,
먼지도 사람도 죽지 않는다.
과거가 죽고 현재가 죽을 뿐이다.
그러나
미래가 영원히 살아있다.
믿는 이들에게, 그분은 말씀하신다.
나는 사람의 미래이다. †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2티모 1,6)
구약시대에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모국어조차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경을 그들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읽어주며 다시 하느님을 찾게 해준 사제가 에즈라 사제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백성들과 그들에게 올바른 하느님의 법전을 알리려고 노력한 에즈라 사제…. 나에게도 그러한 에즈라 사제가 한 분 계십니다. 힘들고 도저히 버티기 힘든 상황 속에서, 그래도 내가 그 고통을 감수하고 이겨내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주시는 신부님이십니다. 힘이 소진하여 다시 지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질 때에 항상 그분은 조용히 제 생활과 고민의 정곡을 찌르시며 하나하나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생활 중에 정리가 안 되고 감정에 치우쳐 앞길을 보지 못할 때도 그분은 항상 성경 말씀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주셨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언제나 가벼워지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 신부님께 대한 믿음, 그리고 신부님이 저를 진심으로 받아주신다는 신뢰는 신부님의 짧은 한마디라도 가슴을 열어 들을 수 있는 저를 만들어 줍니다. 당신은 항상 저희들을 깨우쳐주십니다. 신부님, 언제나 저희 곁에 계셔주십시오. †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2티모 1,13))
가끔 자리를 비우면 바보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직장에서 당한 일입니다.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해서 윗분들께 보고를 하는 등 일을 좀 크게 만들었습니다. 사실은 너무도 유치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한 번 지면 바보가 되고 만다는 생각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헌데 결론은 제가 완전 참패를 당했습니다. 제가 싸운(?) 사람들은 저보다 훨씬 선배들이었거든요. 결정난 일에 승복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은 어찌할 수 없었기에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말씀을 보니 말씀이 마음에 와 닿을 리 전혀 없고, 그저 눈에 띄는 말씀은 “제 앞에는 억압과 폭력뿐, 이느니 시비요 생기느니 싸움뿐입니다”(하바 1,3)였습니다. 저는 어느새 지극히 세속적인 일에 마음을 빼앗겼고 그 안에서 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지옥이었던 마음을 추스리려고 성당에 들어서 보니 너무나도 당당히 바보가 되어있는 또 한 분이 계심을 보았고 이젠 정말 제가 지고 말았음을 고백합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본 말씀 안에는 새로운 말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아야겠습니다. †
2008-06-13 00:25:01 from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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