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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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2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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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23주일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지혜 9,13)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도 아옹다옹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세상살이 중에 많은 걱정들은 마음을 짓누르고 영혼을 지치게 합니다. 인간의 계획이나 의도와 전혀 맞지 않는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계획을 무조건 그분의 섭리라고 하면서 받아들이기엔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그동안 하느님의 이끄심은 우리가 헤아리지 못한 그분의 계획 안에서 커다란 은총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복 음(루카 14,25-33)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ㅇ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ㅇ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ㅇ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ㅇ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ㅇ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ㅇ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ㅇ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ㅇ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제 1 독서 (지혜 9,13-18)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ㅇ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ㅇ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ㅇ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ㅇ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ㅇ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 2 독서 (필레 1,9ㄴ-10.12-17)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ㅇ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ㅇ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ㅇ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ㅇ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ㅇ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ㅇ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ㅇ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오늘의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성립되는 새로운 관계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지혜 9,17-18)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첫째서간 1장 24절에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관계의 변화가 2독서인 필레몬 서간에 묘사됩니다. 바오로는 노예인 오네시모스를 ‘내 아들’, ‘가장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고 부릅니다. 바오로는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전혀 차이가 없이 평등하고, 서로 형제애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동행하던 군중과 우리 모두를 향하여 단호하게 새로운 관계를 위한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첫째,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자기 자신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에 반대되는 이기적 자아를 끊어버림으로써 자신을 참되게 실현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넷째, 자신의 소유를 포기해야 합니다. 가지고자 하는 욕망,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이 무색할 만큼 쉽고도 편하게 자기의 뜻대로, 별 부담 없이 살아갑니다.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의 범람은 근세 이래로 역사의 사생아로서 무신론과 공산주의를 파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긴 서구에 있어서 과거에 그러했다면, 그리고 그 결과 오늘의 비그리스도교화를 초래했다면, 역사가 짧은 우리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사회의 분열과 갈등과 모순이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하지 않는 우리 자신들에게 상당 부분 책임이 있음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금세기의 저명한 신학자 한스 큉(Hans Kung)의 표현대로 우리는 자신에게 진실되이 자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단순히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주일 미사와 고백성사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경고하고 계십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실천적 해방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쓰레기처럼 여길 수 있는 자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자세를 갖추고 싶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지 진실되이 자문해 보고 함께 나누어보십시오.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 (루카 14,27)
나는 성서공부를 통해 너무나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께 나의 십자가를 벗겨달라고만 기도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항상 하느님께 나의 십자가를 벗겨주지 않는다고, 나에게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워주신다고 원망만 많이 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요구하시고 또 내가 견딜 만큼의 십자가를 지워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어렵고 힘들었다고 느끼는 십자가도 시간이 흐르고 돌아보면, 그것은 역시 내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십자가였음을 깨닫게 되고, 정말 내 십자가를 기쁘게 짊어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이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도 느끼게 된다. 진정 나에게 다가오는 아픔과 어려움의 십자가를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길 기도한다. †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지혜 9,14)
세상살이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짧은 시간을 산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늘 하느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헌데 어느 순간부터 세상의 것들이 크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것(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시간들)이 왜 그리도 초라하던지요. 세상의 인간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가 저에게는 곧 진리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의 공허함은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휴가 때의 계획은 연수였고, 주일의 계획은 성당에서 이루어짐이 창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동료들에게, 친구들에게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못하고 휴가를 떠났습니다. 물론 연수원으로…. 그곳에서는 또 한 번 대단한 일이(날로 번창하는 하느님의 사랑작업) 이루어졌습니다. 저 역시 그 기간만큼은 보잘것없는 인간적인 생각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었구요. 또 언제 어느 때 세상살이에 힘이 들어 넘어지고 주저앉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이미 그분은 제 편이 되어주셨음을 믿고 고백할 수 있거든요. †
2008-06-13 00:09:14 from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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