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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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1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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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19주일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루카 12,48)
세상의 잣대로 보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가 많이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며 하느님이 공평하지 않으신 분이라고 원망도 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불공평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지 못함으로 해서 일어난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도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가진 것이 얼마이든 사람은 하느님께 필요한 것 이상의 은총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도둑이 들거나 좀먹는 일이 없는 재물을 하늘에 쌓으십시오.
복 음(루카 12,32-48 또는 12,35-40)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ㅇ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ㅇ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ㅇ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ㅇ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ㅇ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ㅇ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ㅇ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ㅇ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ㅇ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ㅇ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ㅇ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ㅇ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ㅇ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ㅇ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ㅇ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ㅇ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제 1 독서 (지혜 18,6-9)
그 밤이 저희 조상들에게는 벌써 예고되었으니 그들이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ㅇ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습니다. ㅇ 과연 당신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ㅇ 선인들의 거룩한 자녀들은 몰래 희생 제물을 바치고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법에 동의하였습니다. 그 법은 거룩한 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같이, 성공도 위험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벌써 조상들의 찬미가들을 불렀습니다..
제 2 독서 (히브 11,1-2.8-19 또는 11,1-2.8-12)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ㅇ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ㅇ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ㅇ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ㅇ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ㅇ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ㅇ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ㅇ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ㅇ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ㅇ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ㅇ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ㅇ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ㅇ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1.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떠나라고 하실 때 그대로 순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 그가 약속의 땅에서도 천막을 치고 나그네 생활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3.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그의 아내 사라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4. 하느님께서 이사악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기꺼이 바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약속을 - 하늘 나라 또는 그리스도의 재림 - 기다리고 있지만, 그 때를 알지 못하므로 늘 깨어 기다려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은 기다리는 자세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첫째 조건은 믿음입니다.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늙은 아브라함이 떠나고, 자녀를 갖고 또 봉헌한 모든 이유는 오직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약속된 땅과, 민족의 번성은 그 후 700여년 뒤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이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된 이집트 탈출 사건을 지혜서는 찬미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탈출은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구원의 정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는 아브라함이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사 그것을 보고 반겼다고 말합니다.
손에 잡히지는 않으나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기다림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아무런 희망을 갖지 못할 때에 하늘의 수많은 별처럼 반짝이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기다림의 둘째 조건은 성실한 준비입니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나태해지거나, 잊고 살거나, 주인을 부인하고 주인 행세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 나라의 기다림은 기쁨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는 예수님의 권고 말씀은 어떤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쇄도하여 밀려오는 그 빛에 기쁘게 마음과 정신을 활짝 열어놓으라는 촉구의 말씀입니다.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종과 주인이 돌아올 때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행복하다고 예수님께서 보증하십니다. 책임이란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 하며 많이 맡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거멀못 나의 돈지갑은 내가 맡고 있는 것이며, 내가 받은 것임을 인정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기를 당부하며 우리의 마음을 하늘로 이끄는 오늘 복음은, 믿음 없는 기다림은 잠든 것이며 나눔 없는 기다림은 무책임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루카 12,48)
일을 하면서 가장 사람을 지치고 슬프게 하는 일들은 사람과의 관계일 것이다. 특히 내게 있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향했던 것 중 하나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욕먹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그 바람에 충실하게 지내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나의 일이란 것이 워낙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보니 이런저런 부딪침이 많아졌다. 그런 작은 일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고 나중엔 ‘이제 욕먹는 일은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 중에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에 대한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사악이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이라 믿었기에 기꺼이 바칠 수 있었던 아브라함은 더 큰 축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았던 사랑이 결코 내가 잘나서가 아닌 그분의 축복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깨달음, 그 축복을 그분이 가져가시겠다면 내어 드려야 한다는 것,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그분께 기꺼이 내어드릴 때 더 큰 축복을 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희망을 두는 신앙인이 되어야겠다. †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히브 11,13)
우리가 잘 아는 성가의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성가를 들을 때마다 제가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나 윗사람들로부터의 내리사랑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부모님들은 물론이고 여러 모임에서 선배들, 교회 안에서 신부님, 수녀님, 수사님들로부터의 사랑…. 성서모임의 한 선배가 우리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맛있게 먹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고…. 그 말을 들으며 그때는 그 말의 참 느낌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어렸기에 내리사랑을 주는 사람들의 행복감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지 한 5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그 기간 동안 조카도 여럿 생기고 여러 모임에서 이제는 고참이란 말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미숙하지만 밥을 먹는 조카와 후배들을 보면서 예전에 선배가 한 말을 실감할 때가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역사 동안 줄곧 자유롭게 움직이는 우리 인간들을 보살피시며 내리사랑을 하고 계십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런 하느님의 마음을 엿보게 되는 듯합니다. †
2008-06-12 23:51:00 from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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