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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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 29주일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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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 29주일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로마 10,17)
흔히들 요즘 세상을 가리켜 자기 PR시대라고 합니다. 저마다 얼마나 더 효과적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을까 궁리하지요. 하지만 주님의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알리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요?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 소리치면 저 멀리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메아리 되어 옵니다. 이처럼 주님의 말씀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곳곳에서 메아리친다면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울 겁니다. 세상에 가득 찬 많은 것이 젊은이에게 매력을 주겠지만 자신을 던지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복음적 삶은 정말 가치 있겠지요.
복 음 (마태 28,16-20)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ㅇ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ㅇ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ㅇ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ㅇ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제 1 독서 (이사 2,1-5)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ㅇ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ㅇ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ㅇ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ㅇ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제 2 독서 (로마 10,9-18)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ㅇ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ㅇ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ㅇ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ㅇ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ㅇ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ㅇ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ㅇ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ㅇ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ㅇ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민족 복음화는 역사적 소명
오늘은 우리 교회가 특별한 지향을 갖고 온 민족의 염원인 평화적 통일을 기원하는 민족 복음화의 날입니다. 민족 통일의 염원은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과 교회에게 부여한 역사의 소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분단의 현실은 우리 모두가 지고 가야 할 고난의 십자가이기에, 우리는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또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구하며 우리에게 부과된 소명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자문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잃고 어둠의 긴 터널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북녘 동포를 기억하며 어떠한 역경에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해야겠습니다.
참 평화는 하느님의 법과 말씀 안에
시대를 넘어서 참 평화의 열망은 온 인류의 염원입니다. 제 1독서 이사야는 평화의 전달자로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참 평화는 바로 하느님의 법과 계명, 그분 말씀의 정신 안에 서려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참 평화는 세상이 추구하는 평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평화이며 야훼의 정신과 말씀이 깃들여 있지 못한 평화는 영원한 평화일 수 없습니다.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주변 국가와의 대치 속에서 군사적 힘과 인간적 능력만으로 자신들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힘의 논리는 힘으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내다보고 그런 현실적인 것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도록 촉구합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야훼의 평화이며 그분 말씀과 정신 안에 있음을 알립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 증오와 불신이 아닌 너와 내가 모두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제시되어 있고, 우리 모두가 참으로 하나됨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임을 깨우쳐 줍니다.
전교 사명은 교회의 존재 이유
오늘은 더불어 전교 주일이기도 합니다. 전교 사명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전교의 의미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이러한 고백 이면에는 우리로 하여금 신앙인으로써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방식을 갖도록 각성시켜 줍니다. 우리 주위에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복음의 가난한 형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식하며 주님의 파견 명령 앞에 주저함 없이 세상을 향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
신앙의 현주소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과 책임, 의무를 다하는 삶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특히 오늘은 우리 삶과 신앙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며 복음화의 소명을 새롭게 하도록 합시다.
“마음으로 믿으면” (로마 10,9)
도대체 뭐 신나거나, 기분이 좋아지거나, 재미있는 일이 있어야죠. 새 소식을 전한다는 뉴스나 신문에서는 이제는 더 이상 충격일 것도 없는 사건들이 쉬지도 않고 터져 나옵니다. 나 자신으로 눈을 돌려 봐도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늘 분주한 것 같기는 한데, 마음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현실은 참 제 자신을 지치고 외롭게 합니다. 그렇지만, “삶이 이런데 너는 정말로 그분을 마음으로 믿고 있니?”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고 또, “그럼!”이라고 약간 억지를 써 가며 스스로 대답해봅니다. 왜냐구요? ‘그렇기 때문에’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신앙을 체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세상도 내 마음도 어지럽고 혼란스럽지만, 외면하고 있던 그분께로 눈을 돌려 함께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 세상은 나름대로 역동적이어서 아름답고 나도 이런 과정을 통해 점점 성숙해지는 것일테니까요. 자, 오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어 봅니다. 뭔가 좀 신나고, 기분이 좋아지고, 재미있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
2012-10-10 18:39:40 from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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