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가해 | 나해 | 다해

(가해) 주님 세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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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가해 주님 세례 축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 3,17)
세례는 영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기며 타성에 젖어 더 이상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에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힘이며, 나의 삶의 방식을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적 양식입니다.
복 음 (마태 3,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ㅇ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ㅇ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ㅇ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ㅇ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제 1 독서 (이사 42,1-4.6-7)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ㅇ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ㅇ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ㅇ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ㅇ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ㅇ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제 2 독서 (사도 10,34-38)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ㅇ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ㅇ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ㅇ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ㅇ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에너지
1)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같은 뜻을 가진 한 단어를 찾아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예수님께 부어 주시어 예수님을 구세주로 세우셨으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것으로 요한의 세례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짓눌린 사람들
2) 사도행전이 전하는 이방인 코르넬리우스 집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 말씀은, 예수의 세례 사건으로 드러난 하느님의 모든 이들을 위한 구원 의지가 초대교회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어 가는지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찾아가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할 오늘의 이방인들은 누구입니까?
하늘이 열리고
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일어난 세 가지 일을 찾아보시고 각각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세례, 그 후
4) 예수님의 세례 사건은 예수님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공적으로 분명히 드러낸 또 하나의 공현이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의 수렁에 빠져 신음하는 모든 불쌍하고 가련한 이들의 고통과 불안, 고독과 나약함, 좌절을 함께 짊어지고 가신다는 새로운 구원의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 나의 체험에 대해 나누어 봅시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태 3,15)
가끔 영화나 만화에서 폭력배들의 문신 중에서 ‘착하게(혹은 차카게) 살자’ 라는 것을 봅니다. 폭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몸에 새기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웃곤 하죠. 하지만 한편으로 공감되는 면이 있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스스로 착하게 살고 싶었지만, 주변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어 일상이 되어 폭력배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몸에 고통을 겪으며 ‘착하게 살자’라는 문구를 새길 정도로 실상은 착하게 살고 싶었던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만약 남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면 나도 폭력배가 되지 않았을까요?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오늘은 친절하게 일을 해야지 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부당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 찡그리며 진료를 하게 됩니다. 차를 곱게 몰아야지 하다가도 무작정 끼어드는 버스를 보면서 액셀을 밟으며 더 늦기 전에 그 버스를 막으려 노력합니다. 돈은 조금씩 아껴서 저축하면 되겠지 하다가도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을 보면 주식, 부동산 등에 관심을 갖게 되고요. 그리고 저축보다는 투기를 더 동경하게 됩니다. 폭력배들처럼 ‘착하게 살자’라는 것을 몸에 새기지는 않지만 우리 신자들도 매 주일 미사 때마다 “내 탓이오”를 연신 외치면서 착하게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가슴을 치면서 다짐을 하지만 그렇게 다짐하며 살다가 돌아오는 보상의 초라함에 마음 아파할 때가 있습니다. 어차피 착하게 살지 못할 것을 처음부터 그냥 나만을 생각하고 편히 살 걸 하는 후회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라고 준엄하게 말씀하십니다. 착하게 살려다가 마음고생만 하고 실상은 그렇게 살지 못한 나를 세상의 어떤 것도 위로해 주지 못합니다. 나 스스로도 착하게 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그분만은 다시 한 번 착하게 살기 위해 가슴을 치고 있는 저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게 당신의 뜻을 이루는 길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
2008-06-19 11:43:55 from 211.1

(가해) 연중 제 2주일
(가해) 주님 공현 대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