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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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사순 제 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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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사순 제 3주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4,14)
이 일 저 일에 쫓겨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때, 마음의 우물은 메말라 갑니다. 삶에서 오는 갈증의 해소는 바로 이 마음의 우물을 채울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메말라 가는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솟아나는 생수로서 마음의 우물을 채울 때입니다. 생수를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생수, 그것은 하느님께 다가서는 우리의 선택이 아닐까요?
복 음 (요한 4,5-42 또는 4,5-15.19ㄴ-26.39ㄱ.40-42)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ㅇ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ㅇ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ㅇ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ㅇ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ㅇ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ㅇ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ㅇ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ㅇ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ㅇ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ㅇ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ㅇ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ㅇ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한 것은 맞는 말이다. ㅇ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 ㅇ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ㅇ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ㅇ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ㅇ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ㅇ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ㅇ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ㅇ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ㅇ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ㅇ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ㅇ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ㅇ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ㅇ 그리하여 그들이 고을에서 나와 예수님께 모여 왔다. ㅇ 그러는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 “스승님,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ㅇ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하시자, ㅇ 제자들은 서로 “누가 스승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 드리기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하고 말하였다. ㅇ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ㅇ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수확 때가 온다.’ 하고 말하지 않느냐?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이미 ㅇ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ㅇ 과연 ‘씨 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 이가 다르다.’는 말이 옳다. ㅇ 나는 너희가 애쓰지 않은 것을 수확하라고 너희를 보냈다. 사실 수고는 다른 이들이 하였는데, 너희가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ㅇ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여자가 “저분은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혔습니다.” 하고 증언하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ㅇ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ㅇ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ㅇ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제 1 독서 (탈출 17,3-7)
백성은 그곳에서 목이 말라, 모세에게 불평하며 말하였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 ㅇ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ㅇ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원로들 가운데 몇 사람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거라. 나일 강을 친 너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ㅇ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ㅇ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비하였다 해서,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하였다.
제 2 독서 (로마 5,1-2. 5-8)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ㅇ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ㅇ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ㅇ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ㅇ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ㅇ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물 = 생명
오늘 전례 말씀은 ‘물’을 주제로 삼아 사순절에 관한 신앙적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서상으로 물이 상징하는 신앙적인 의미는 심오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적인 요소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근원적 요소로써 제시되고 있습 니다. 즉 물이 상징하는 그 생명적 근원에 근거해서 오늘 1독서와 복음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신비를 적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광야 = 생명의 체험
탈출기에서 발췌된 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목말라 불평하는 그 유명한 내용입니다. 물론 백성들의 불평 요인은 물에 대한 육신적 갈증이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이유일 뿐 그들에게 더 필요했던 것은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 정신적인 영혼의 해갈이었음을 독서는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구원해 준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잊고 여전히 하느님을 의심하는 불신을 드러냅니다.
결국 하느님은 중재자인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불평을 해결해 주십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생존 불가능한 현실, 그것이 광야가 상징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우심과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곳이 광야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광야는 더 이상 고통과 죽음의 실재가 아닌 영원한 생명을 맛보게 하는 신앙적 시련과 단련의 장소로 드러납니다. 광야와 같은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독서말씀이 주는 교훈은 매우 큽니다. 조금이라도 고통스럽거나 힘든 처지에 직면할 때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기보다는 그런 현실에 불평하고 세상과 이웃, 하느님을 탓하는 우리의 나약한 신앙생활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 = 생명 = 예수님
같은 맥락으로 복음은 세속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갔던 사마리아의 한 여인과 대화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요한 복음이 소개됩니다. 그 여인은 신분상의 한계와 떳떳치 못한 윤리적 문제를 감추려 하지만 예수님은 자연스런 대화 속에서 그 문제점을 깨닫게 하시고 더불어 메시아이신 당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진리를 전해주고 계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그것은 놀라운 체험입니다. 지금까지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고 방황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과의 만남은 경이롭고 새로운 체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은폐시키거나 감출 수 없는 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죄 많은 우리들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우리들이 어떤 처지에서 살아가는지 성찰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영혼의 갈증으로 목말라하는 인간에게 물을 주시는 샘이시고 원천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물을 청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의 문제를 알고 먼저 다가오시는 하느님 사랑 그 자체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사랑 앞에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죄 많은 인간에게 조건 없이 다가오시는 하느님 사랑과 은총의 손길을 맛보는 시간입니다. 이번 한 주간은 죄 많은 세상 안에서 갈증에 허덕이는 우리들에게 샘솟는 물을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마음으로 보냅시다.
목마름
1) 사마리아 여인이나 제자들은 진정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육체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물이나 허기를 채워주는 양식을 찾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제 1독서에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말라 견딜 수 없게 되자 하느님께 대들고 시험하는 불충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목말라 찾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목마름과 허기짐 때문에 하느님께 대들고 하느님을 시험하려고 한 적은 없었습니까?
물동이를 두고
2)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자 지체 없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알렸으며 그로 인해 동네 사람들도 그분을 만나 그분이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서 사마리아 여인과 비교하여 생각해 봅시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요한 4,10)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흔히 쓰는 말 중에 하나가 ‘그럴 줄 알았더라면⋯’이라는 말입니다. 미리 그 결과를 알 수만 있다면 상당 부분 우리의 생활은 편해질 것이며 괜한 마음고생이나 노력도 절약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연약한 우리는 무수한 사건 속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마치 교통이 혼잡한 네거리에 서있는 장님처럼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릅니다.
저는 이제 막 운전을 시작한 초보 운전자입니다. 차를 몰고 전혀 모르는 길을 찾아 나설 때면 늘 두려운 마음부터 앞서기 마련입니다. 그 때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이정표만을 찾게 됩니다. 오늘 나에게 해로운 일이 내일이면 유익한 것이 될 수 있음을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분은 또한 먼 훗날을 위해 예비하신 일이 오늘 일어나는 것을 원하시지 않을 것이며 어떤 다른 곳을 위하여 마련하신 일이 내가 자리하고 있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으실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정표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자신이 가야할 길조차 찾지 못하는 초보 운전자와도 같은 제가 당신의 길을 두려움 없이 갈 수 있는 것은 요한 성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을 다 담아내지 못할“ ‘도움의 신비’가 늘 제 삶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로마 5,5)
요즘 문득 문득 이런 나쁜 생각이 제 마음을 차지하곤 합니다. ‘건강, 일, 사랑 어떤 것도 안 풀리는 꽉 막힌 내 인생. 마치 깜깜한 터널 속 같다. 게다가 랜턴조차 없이 그 터널을 홀로 걷는 듯 막막하고 외롭기만 하네’ 라고 말입니다.
때론 결단과 실천이 필요했는데 시기적절한 때에 결심하지 못한 나의 우유부단함이 건강, 일, 사랑 모두를 잃게 한 듯 속상하고 자책감이 들곤 합니다. 한때는 어리석게도 제 문제들의 원인을 타인과 환경에 두고 원망감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압니다.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인생의 키는 상당부분 내가 잡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내 자신을 반성할 만큼 조금은 성숙했다는 사실이 다행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런 저를 어떻게 보실까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은 원인에 대한 책임유무나 잘잘못을 따지시는 분이 아니지요. 그분은 우리가 흔히들 따지고 분석하는 원인과 결과에도 관심이 없으실 것 같아요.
하느님이 정말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각자의 마음 안에 희망이 싹트기를, 그리고 믿음을 갖고 그 희망을 바라보며 노력하기를 바라시지 않을까요? 이제 정말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겠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희망을 품은 사람이 얼마나 아름답고 빛이 나는지. 또 희망을 갖고 사는 삶은 이미 그 과정이 행복이고 기쁨이요 성취인 것을 말이지요.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 <킴벌리 커버리>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 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2008-06-19 11:58:28 from 211.1

(가해) 사순 제 4주일
(가해) 사순 제 2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