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가해 | 나해 | 다해

(가해) 연중 제 13주일 (교황 주일)
1534 views, 0 comments


[가해] 연중 제 13주일 (교황 주일)
얻으려는 사람은 잃고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마태 10,39)
가끔 삶의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사람들을 보면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남보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좀 더 나은 생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누구도 쉽게 만족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잠깐! 무언가를 열심히 쫓고 있는 마음 한 구석에 남을 위해 내어 주는 여유 있는 공간을 마련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을 얻게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심보다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복 음(마태 10,37-42)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ㅇ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ㅇ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ㅇ“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ㅇ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ㅇ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제 1 독서(2열왕 4,8-11.14-16ㄱ)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에 사는 한 부유한 여자가 엘리사에게 음식을 대접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서 엘리사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의 집에 들러 음식을 먹곤 하였다. ㅇ그 여자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여보, 우리 집에 늘 들르시는 이분은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ㅇ벽을 둘러친 작은 옥상 방을 하나 꾸미고, 침상과 식탁과 의자와 등잔을 놓아 드립시다. 그러면 그분이 우리에게 오실 때마다 그곳에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ㅇ어느 날 엘리사가 거기에 갔다가 그 옥상 방에 들어 쉬게 되었다. ㅇ엘리사는 종에게 “그러면 저 부인에게 무엇을 해 주면 좋을까?” 하고 물었다. 게하지가 “저 부인은 아들이 없는데다가 남편은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ㅇ그러자 엘리사는 “여자를 불러라.” 하고 일렀다. 종이 여자를 부르니 그 여자가 문간에 섰다. ㅇ엘리사가 말하였다. “내년 이맘때가 되면 부인은 한 아들을 안게 될 것이오.”
제 2 독서(로마 6,3-4. 8-11)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ㅇ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ㅇ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ㅇ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ㅇ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죄와 관련하여 단 한 번 돌아가신 것이고, 그분께서 사시는 것은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ㅇ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오늘 독서, 복음은 한국 가톨릭 교회가 남북 통일을 위하여 그리스도인으로써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가 담겨 있습니다. 회개와 용서를 통한 사랑의 생활과 믿음의 기도로써 민족 화합과 통일을 기원합시다.
보잘 것 없는 이웃을 향한 선행
오늘 말씀은 1독서와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작은 이들’을 향한 선행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작은 이들’은 일차적으로 엘리사와 같은 예언자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대상은 오늘 날의 사제와 수도자와 같은 특수 사도직을 수행하는 사람을 염두에 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의미를 좀 더 확대시켜 본다면 바로 하느님의 뜻과 양심에 위배됨 없이 자신의 길을 소신 있게 걸어가는 모든 의인들도 해당됩니다. 그런 이웃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은 물론 우리 자신도 그런 삶을 지향하도록 오늘 말씀은 주지시켜 줍니다.
1독서는 한 부유한 여자가 나그네와 같은 엘리사 예언자를 극진히 대접하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 나무 밑에서 지나가던 나그네를 대접한 창세기 내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보통 나그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게 성경의 기본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자는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소박하게 실천하는 한 의인의 모습을 우리는 보여줍니다.
보통 길손님은 고아나 과부, 외국인 노예와 같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던 성경의 가난한 이웃입니다. 그러한 이웃을 따뜻이 돌보는 이 여인의 훌륭한 점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이 여자와 같이 어떤 인간적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조건 없이 이웃을 내 몸같이 받아들이며 사랑을 실천해야 하며, 그럴 때 풍요로운 하느님의 상급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알려줍니다.
버리면 얻을 것이고, 죽으면 살리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을 온전히 의지하고 만사를 당신께 맡기기를 요구하십니다. 주님과의 삶이 그 밖의 모든 인간관계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너 자신을 묶어두는 인간적인 소유욕과 집착을 벗어 버려야만 내가 너에게 주고자 하는 것을 얻을 것이고, 네가 얻고자 하는 것도 덤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버리면 얻을 것이고, 죽으면 살리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는 이 가르침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몸소 우리에게 실천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 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죄와 관련하여 단 한 번 돌아가신 것이고, 그분께서 사시는 것은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의 새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삶입니다.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1) 그러기 위해서 첫 번째로 구태의연한 옛 생활방식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나에게 있어 옛 생활방식, 즉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나누어 보십시오.
2) 두 번째로 현세가 주는 물질적이고 문화적인 혜택에 자신의 행복을 거는 일체의 가치관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런 가치관을 따르는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삶의 유형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나누어 보십시오.
찬물 한 그릇
3) 교황 주일을 맞이하여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는 말씀을 잘 새겨 보십시오. 교황님을 비롯한 우리 주변의 성직자, 수도자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드립시다.
4) 무심코 행한 보잘것없는 친절이 놀라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친절은 하느님의 마음으로 가득 찰 때 주어지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누군가에게 친절해 본 적이 있는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마태 10,39)

어려서 내가 처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는 이 세상에는 내 것이 아닌 물건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외아들이었던 나는 이전까지는 그 무엇이든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이 세상에는 내가 손대서는 안 되는 물건도 있으며 부모님만이 만질 수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된 사실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재물도, 명예도, 높은 지위도, 사랑하는 여인도 심지어는 가족마저도 결코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인가 성체조배를 하다 문득 바라본 나의 손가락. 공교롭게도 인간의 다섯 손가락은 모두 서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 손가락을 모으지 않고는 물 한 줌 퍼 올릴 수 없습니다. 언젠가 책에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결코 이 세상 것으로는 충족될 수 없다”는 구절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저 먼 동방 원정을 마친 후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음을 슬퍼한 알렉산더 대왕을 압니다. 인간은 무한한 것만을 포옹할 수 있는 두 팔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그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무한하신 하느님뿐입니다. 때문에 그 모든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자주 아파하는 내 마음 안에 무한하신 당신을 담아 나의 삶이 그분의 평화로움으로 다스려지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마태 10,42)

어릴 적부터 상이라는 것은 내가 누군가와 경쟁에서 이겼을 때 주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컸다. 물론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고 나서도 상이라는 것은 내가 아니면 다른 이가 받게 되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는 세상에서 상이라는 것은 성공이라는 말과 연결되고, 상을 받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상대적인 노력에 더 집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게 경쟁이란 것은 다소 부정적이며, 신앙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곤 하였다. 하지만 선물로 받은 책 하나를 읽으면서 경쟁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나를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닌, 내 가슴과 영혼이 원하는 일을 하게끔 하려는 것이며 내 안에 있는 최고의 나와 만나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 책의 이야기가 오늘 말씀의 ‘상’이라는 것과 이어질 수 있음을 느꼈다. 이 시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신앙인으로서 내 가슴과 영혼이 진정 원하는 일을 고민한다면, 그 일은 분명히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모습으로 나를 이끌 것이며, 그로 인해 그분이 주실 상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8-07-01 12:22:11 from 211.1

(가해) 7월 6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
(가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