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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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연중 제 2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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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연중 제 28주일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 4,13)
우리는 세례 때에 모든 죄악을 끊어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그분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끊어버립니다! 믿습니다!” 하며 호언장담을 했던 우리는 어느새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둘째 아들과 같은 사람은 아닌지 돌아봅시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언제든지 돌아오기만 하면 살려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그 말씀이 주는 희망이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 그것만은 잊지 말고 살아가십시오.직장인들에게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를 물어보면, 대부분이 인간관계라고 말합니다. 사람들과 원만히 지낸다는 것. 그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자 하는 선의지가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예수님, 그분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선한 능력에 힘입어 그 시대 어느 부류의 사람들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선의지(善意志),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복 음(마태 22,1-14 또는 22,1-10)
예수님께서는 또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ㅇ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ㅇ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ㅇ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ㅇ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ㅇ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ㅇ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ㅇ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너라.’ ㅇ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ㅇ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ㅇ‘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ㅇ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ㅇ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제 1 독서(이사 25,6-10ㄱ)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ㅇ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ㅇ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ㅇ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ㅇ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제 2 독서(필리 4,12-14.19-20)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ㅇ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ㅇ그러나 내가 겪는 환난에 여러분이 동참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ㅇ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ㅇ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약속된 희망의 날
오늘 제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약속된 희망의 날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사야는 그 날 온 세상을 위해 큰 잔치가 베풀어지는 기쁜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잔치는 하느님의 현존으로 누리는 기쁨과 축복을 뜻하는 상징으로서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가 체험한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합니다. 용기백배할 때도 있었고 절망에 허우적거릴 때도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을 때도 있었고 풍부할 때도 있었습니다. 자유의 몸일 때도 있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환경에서 그는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힘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하늘 나라와 잔치의 비유
어느 공공기관의 식당 입구에 다음과 같은 팻말이 있습니다. “대식당은 여러 사람이 함께 식사하는 곳입니다. 단정한 옷을 입고 출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흙먼지가 묻은 작업복이나, 땀 냄새나는 복장으로 식당에 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붙인 팻말입니다. 밥 먹는 것 보고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우리의 정서에 비추어 보면, 흙먼지가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식당에 출입한다 해도 식사 중에 식당 밖으로 나가 달라거나, 주의를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조심해 달라고 당부하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식당에서 자기 돈 내고 밥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장소의 질서를 지켜야 됨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회생활에 있어서 이처럼의 당연한 이야기를 하늘 나라의 비유에서 새롭게 듣습니다.
오늘 복음은 잔치에 초대받은 두 부류의 사람들을 소재로 하늘 나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부류는 오래 전부터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지만 그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거절한 사람들이고, 또 한 부류는 기대도 하지 못했는데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요구와 하느님의 초대
유다인들은 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가 도래하는 징표는 잔치로 나타난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를 이용하여 하느님 나라의 은혜로움을 강조하고 구원에로의 초대를 거절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힐책하십니다. 따라서 이 비유의 핵심은 ‘모든 준비를 갖추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는 임박한 구원에로의 초대와 이 초대에 우물거리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입니다.
이 비유에서 뒷부분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의 비유는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행실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교회 안에 들어와 있던 마태오의 신자 공동체를 향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초청되었으나 시간이 되었을 때 참석하기를 거절한 손님들은 유다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이미 그들은 하느님의 선민으로서 초청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서 그를 따르고 하늘 나라에 들도록 초청했을 때 저들은 그 초청을 간과해 버린 것입니다.
참석하기를 거절한 손님들은 술타령이나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러 가기 때문에 참석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일상 사업(밭일, 장사)을 하기 위하여 떠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시한적인 일에 분주하여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기 쉽고,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되어 보이지 않는 것을 잊기 쉬우며, 강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요구에 귀 기울이느라 부드러운 그리스도의 초청을 놓치기 쉽습니다.
은혜로운 초대에 맞갖은 예복
기대도 하지 못했었는데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이 우리를 초대하심이 결국은 은혜의 초대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으나 오직 임금의 포용력과 관대한 아량만이 그들로 하여금 왕궁에 오게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방인들과 죄인들이 어떻게 해서 하늘 나라에 모여 왔는가를 말해 줍니다. 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왕궁의 혼인 잔치에 들어 올 때는 그들에게 베풀어진 사랑에 부합할 만한 생활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왕궁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들어갈 수는 있으나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복을 입고
1) 우리는 매 주일마다 죽음을 극복하신 승리를 경축하는 부활 축제인 미사성제에로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잡다한 일상생활 때문에 그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람들과 나 자신을 비교해 보십시오. 내가 주일미사에 기쁘게, 그리고 예복을 갖추어 입고(잘 준비된 마음으로)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일상사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나누어 보십시오.
힘을 주시는 주님
2)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바오로처럼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필립 4,12)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먼저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계획에 맞추어 그 일들을 해 나갑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거나 믿어 주지는 않지만, 내 나름대로 소신껏 준비하여 차곡차곡 쌓인 실력들이 그 진가를 발휘할 때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살이 같습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망설이고, 이리저리 재어도 보고, 때로는 성실하게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돌아오는 대가가 불합리할 때, 그것을 참을 수가 없어서 오랫동안 실의에 잠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믿을 수 없고 불확실한 세상이 나를 진 빠지게 할 때 하느님과 함께 한 시간들을 떠올려 봅니다. 절대로 나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하느님께 대한 확신과 사랑이 저를 또 다시 일으킵니다. 아직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에 능숙하지는 않지만 그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것들을 받기 위해 나 역시 준비해야 합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이 예복을 갖추어 입듯이, 하느님을 맞아들이기 위한 나의 준비가 육체의 양식을 얻기 위한 것보다 오히려 소홀하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 †
2008-08-09 19:28:47 from 211.1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가해) 연중 제 27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