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득솔

보득솔은 낙락장송을 꿈을 안고 있는 작고 어린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청년성서모임이 펼치고 있는 주일 독서 복음 묵상 운동의 이름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만날 수 있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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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연중 제 19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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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연중 제 19주일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 14,27)
“왜 하느님을 믿습니까?” “행복해지려구요.” 이 때의 행복은 좀 더 배부르고,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했을 때 느끼는 쾌락의 일종이 아닙니다. 하느님 뜻에 따른 삶의 가치를 신뢰를 갖고 선택했을 때, 그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함과 그 무엇도 겁낼 것 없는 당당함에서 비롯한 행복입니다.
복 음(마태 14,22-33)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ㅇ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ㅇ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ㅇ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ㅇ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댔다. ㅇ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ㅇ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ㅇ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ㅇ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ㅇ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ㅇ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ㅇ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제 1 독서(1열왕 19,9ㄱ. 11-13ㄱ)
그가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그곳에서 밤을 지내는데,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ㅇ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는데,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할퀴고 주님 앞에 있는 바위를 부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ㅇ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불속에도 계시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ㅇ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제 2 독서(로마 9,1-5)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ㅇ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ㅇ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ㅇ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ㅇ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오늘 제 1독서의 주인공인 엘리야 예언자는 오직 주님만이 권능을 지닌 이스라엘의 참 하느님이심을 선포하고 우상인 바알의 예언자 450명을 모두 죽였습니다(1열왕 18,20-40).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이었고, 왕후는 이제벨이었는데 바알의 광신자였던 이제벨은 그 예언자들의 학살에 분개하여 엘리야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엘리야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던 호렙산(시나이산)으로 도망치게 되었고 거기서 강한 바람, 지진, 불이 아닌, 조용하고 여린 소리 가운데 나타나신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마태오 복음은 거센 풍랑에 시달리는 제자들의 배와 거센 바람을 보자 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물에 빠져 들게 되어 비명을 지르는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시련과 박해 속에 시달리는 믿는 이들과 교회 공동체에 대해 교훈적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 그분이 함께 배에 오르시자 잔잔해진 바람 등으로 강조되고 있는 그분의 현존과 권능에 대한 용기 있는 믿음과 의탁이야말로 믿는 이들과 교회 공동체가 해야 하는 최선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현존
1) 하느님께서 위대한 우주적 사건이나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거의 무의미하게 보이는 매일 매일의 사소한 작은 일들에도 현존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나의 일상적 삶 속에 현존하시며 살아 계신 그분에 대해서 묵상하고 나누어 봅시다.
풍랑
2) 나의 일상생활 중에서 제자들의 배나 베드로처럼 믿음의 시련을 겪었던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나다!"
3)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사랑과 능력의 하느님이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바로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마태 14,30)

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한 기회에 지금 다니는 회사를 알게 되어 입사하게 되었다.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외국인 회사에, 전문직, 연봉수준도 높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공무원처럼 오래 일할 수도 있는 안정적인 회사였다. 처음에는 만족하며 다녔던 회사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다른 일을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일을 시작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적지 않은 나이에 이 안정된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으로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도전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수없이 기도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매일 여쭤보지만 그분은 침묵이셨다. 무작정 뛰어 들어 일하면서 ‘혹시 내게 허락하신 일이 아닌 게 아닐까?’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은 내 안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그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 결국 또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때를 돌아보니 난 그저 현실에 대해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님께서 영화에서처럼 ‘이렇게 하렴’ 하고 결정해주시기를 바라면서 기도했었고, 온전히 그 일을 사랑하며 온 마음으로 노력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당시의 나의 믿음은 내가 선택한 일을 열심히 하면서 감사하는 모습이 아니라 주신 몫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었다. 지금은 하느님께서 ‘너의 갈 길은 이쪽이야’ 라고 말씀해 주시기를 바라기보다 내게 주신 좋은 몫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마태 14,31)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이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아, 저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고 있구나, 나를 믿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일 것입니다. 제 자신이 그런 주위 사람의 호의 속에서 커왔고, 어려울 때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힘이 되어주기도 했었지요. 중국 사람들은 쉽게 타인을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일단 한번 신임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대한다고 하더군요. 설사 그 사람이 나중에 배신할지라도 사람을 잘못 본 자신의 눈을 탓한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하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포함된 인간관계 안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타인에 대한 신뢰 같습니다. 몇 년 전 작은 모임을 끌어가면서 함께 일했던 후배가 있었습니다. 내 딴에는 신경을 쓴다고 했지만 그 후배는 우리 모임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는 적당한 기회가 없었고 얼마 후 모임을 떠났습니다. 우연히 다른 모임에서 그 후배가 자신의 숨은 능력을 발휘하면서 눈을 반짝이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내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던가를 생각하며 그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그 후배를 신뢰하지 못했고 주위의 잘한다는 칭찬에 우쭐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제공되어야 할 기회까지도 내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주 저지르는 저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배반당하면서 끝까지 타인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중국 사람들의 우직한 모습이 참 아름답게 비춰지는 오늘 저녁, 이런 생각도 드네요. 그런 모습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실현하는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
2008-07-16 15:47:02 from 211.1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가해) 연중 제 18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