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말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제1독서 (지혜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화답송 시편 126(125),1-2ㄴ.2ㄷ-3.4-5.6(◎ 5)
◎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
○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
○ 주님, 저희의 귀양살이,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
제2독서(로마 8,31ㄴ-39)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35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36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온종일 당신 때문에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39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복음 (루카 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으로 가득 차 있다. (지혜 3,4)
☞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 8,39)
* 빈칸을 채우고 천천히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습니다.
오늘은‘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한국 땅에 천주교회가 정착하기까지 백년이 넘는 박해의 역사 속에서 목숨 바쳐 신앙을 지키신 분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 당시 그분들은 벌을 받고, 목숨을 빼앗긴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분들의 정신은 불사의 희망으로 지켜내신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오늘날까지 우리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순교 성인들의 삶을 묵상하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 8,38-39)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문득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신앙인으로서 나는 과연 어떠한 확신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가하고 말입니다. 솔직히 제가 사도 바오로나 순교자들처럼 굳은 믿음과 확신 속에서 살고 있는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라는 호기로운 질문 앞에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주님을 믿는 이들은 그 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지혜 3,9) 하신 말씀과는 달리 저는 늘 많은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로는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저는 무엇이 그토록 걱정스럽고 두려운 것일까요.
잠잠히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하지는 않겠지만, 제가 그 박해의 시대를 살았더라도 꼭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잠시 주님을 배반하더라도 살아남아서 더 오래 사랑을 실천한다면 그것이 더욱 영리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죽음이 두렵고 피하고 싶은 제 마음의 변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꼭 생사가 아니더라도 저는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주님을 위하여 아주 작은 환난도, 역경도, 헐벗음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하고 싶은 삶의 어려움들 앞에서 저는 계속 작아지고 많은 것들이 두려웠습니다. 이런 작고 부족한 제 마음을 깨닫고 나니,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분들의 마음은 더 아득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도 그분들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문득 그 분들이 선택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리 죽이시오. 주님의 품안에 가고 싶소이다.’ 하셨다는 어느 순교자의 마지막 말처럼 그분들이 선택한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닌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였으며 그 삶은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죽음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영원한 삶이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이기에, 그 사랑에 대한 확신과 믿음으로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두려움과 많은 고난까지도 기꺼이 이겨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유아 세례를 받고, 오랜 시간 성당을 오가며 지내던 제게 신앙은 늘 거저 주어진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목숨 바쳐 지켜오고 전해주신 신앙임을 실감하고 나니, 무심한 마음으로 신앙을 그저 습관처럼 부여잡고 살아왔던 날들이 부끄러워집니다. 이제 저도 순교자들의 굳은 믿음을 본받아 주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환난과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굳은 확신을 갖고 하루하루 순교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 사랑이신 주님, 저희가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아 이 세상에 머물면서도 주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도우시어, 당신과 함께 영원한 사랑 속에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
☞ 스스로가 생각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순교자의 믿음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